서론
ICT 발전에 따른 새로운 치료법으로 대두된 디지털 치료기기가 개발에 성공하여 상용화됨에 따라 소프트웨어 자체가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시대가 국내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중재(evidence-based therapeutic intervention)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tware as medical device, SaMD)이다. 전 세계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은 2020년 21억 1,780만 달러에서 연평균 성장률 26.7%로 증가하여, 2025년에는 69억 46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Fig. 1).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은 2020년 4,742만 달러에서 연평균 성장률 23.2%로 증가하여, 2027년에는 2억 437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Fig. 2).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디지털 치료기기의 개발·임상·허가 지원을 위해 선제적으로 2020년 8월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최초 발간한 이후로, 불면증, 알코올·니코틴 사용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섭식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개선 7개 적응증에 대한 성능 평가 및 임상시험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바 있으며, 2027년까지 8종의 임상·허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23년 2월 불면증 개선을 표방하는 ‘Somzz’를 시작으로, 같은 해 4월 불면증 개선 제품 ‘WELT-I’, 2024년 4월에 시야장애 개선 제품 ‘VIVID Brain’과 호흡 기능 개선 제품인 ‘EasyBreath’까지 총 4개의 제품이 허가된 바 있다.
본론
2019년 12월 디지털헬스케어법(DVG)을 제정한 독일은 이러한 디지털 치료기기 제품들이 법정 건강보험의 급여목록에 포함되도록 하는 제도를 최초로 시행함으로써 건강보험법에 따른 규제 체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보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요구 조건(안전성, 사용성, 정보 보안 등)을 약 3개월 동안의 평가를 통해 제시한 기준이 충족되어 통과하게 되면 임시 등재가 되고 1년 동안의 효과 검증을 통해 영구 등재가 이루어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임시 등재가 되더라도 독일 건강보험(GKV)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1년 동안 치료 효과를 입증하면 된다. 이러한 독일의 제도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빠르게 보험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독일 DiGA에 2023년 6월 23일 기준으로 등재된 제품은 총 53개지만, 현재 사용 가능한 제품은 총 47개(영구 등록 제품 18개, 기승인 제품 29개)이다. 영구 등록된 제품 18개의 리스트는 Table 1과 같으며, 신경 정신과 영역의 제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 산업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2017년 설립된 국제 비영리 산업계 협회인 DTA (Digital Therapeutics Alliance)의 공식 홈페이지(dtxalliance.org)의 Product library에서도 각 나라에서 사용되는 일부 디지털 치료기기 제품에 대한 정보(제품 및 임상 등)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참고할 수 있다. 미국 FDA는 2017년 9월 약물 사용 장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모바일앱 형태의 제품 ‘reSET’을 최초 승인하였다(Fig. 3). 이후 2018년 오피오이드 사용 장애 치료앱인 ‘reSET-O’를 2020년에는 불면증 치료앱인 ‘Somryst’를 승인하였다. 전기수술기나 방사선 치료 장비와 같은 전통적인 기기나 장비가 아닌 소프트웨어 형태만으로도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허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FDA도 이러한 디지털 치료기기와 같은 디지털 헬스 제품들에 대한 규제 정책들을 계속 발표하고, 규제 방법에 변화를 주는 법안들을 통과시켜 왔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비상 상황에서 치료를 제공하는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임시 승인을 허용하기도 하였다. 2017년부터 2023년의 미국의 디지털 치료기기 분야별 시장을 살펴보면 행동교정 분야가 전체의 31%, 복약 지원이 29.6%, 만성질환 관리가 25%,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이 14.4%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도 이러한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기존 혁신 의료기기 허가(인증) 제도와 신의료기술평가(혁신의료기술), 보험등재 3개의 절차를 통합한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 제도를 구축하여 기존 390일의 심사 기간을 80일로 단축하는 패스트 트랙을 운영 중이다. 최대 80일이 걸리는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와 최대 250일이 걸리던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혁신의료기술평가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기존의 혁신의료기술의료기기 제도를 일괄 통합한 것이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4개의 디지털 치료기기 제품 모두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 제도를 통해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결과 고시’ [별표 3] 혁신의료기술 10. 13. 25. 26으로 고시된 바 있다. 4개의 허가된 제품 중 4호로 허가 받은 제품인 ‘EasyBreath’는 호흡재활에 사용되는 제품으로 식약처에서 허가한 사용 목적은 ‘만성폐쇄성폐질환, 천식, 폐암, 기관지 확장증 등의 호흡재활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호흡재활 훈련을 하여 환자의 유산소운동 능력 개선 및 호흡곤란 증상 경감을 목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이다. 동 제품은 8주간의 맞춤형 호흡 재활 훈련(6분 보행 검사를 바탕으로 걷기 등의 유산소운동 중심 프로그램)을 환자에게 모바일앱을 통해 구현하였다. 현재 식약처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는 2024년 11월 기준 80건으로, 신경 정신과 영역의 제품들이 많지만, 호흡재활 및 심장재활 분야에도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은 제품이 있어 호흡재활 등 재활 분야에서도 디지털 치료기기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제품들의 개발 및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식약처의 허가 이후 신의료기술평가, 임시급여 등재 3년 등 진입 장벽이 여전히 존재해 괴리감이 남아있는 상태임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며,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적절한 보상 및 처방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 등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결론
디지털 치료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범용 플랫폼인 기기를 통해 환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로, 의도한 대로 환자가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지속적인 치료가 가능한 유망한 기술이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중요한 관점은 환자들의 실제적이고 진심 어린 사용이고, 사용에 따른 결과를 의료인이 환자의 후속 치료 등에 적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결국은 환자에 대한 높은 치료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제품의 특성상 사용자의 사용 여부에 따른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 제품의 임상적 유효성 등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허가 이후에도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상적 유효성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치료기기는 제품의 유효성 입증과 접근성 확대 등을 통해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 전자의무기록(EMR) 연동 등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도록 처방 플랫폼과 요양급여 등의 기준 마련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특성에 맞는 규제 적용이 필요하다. 최초의 디지털 치료기기로 주목 받은 페어 테라퓨틱스社가 실패한 원인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기술력이 있어도 수익에 대한 예측이 모호해진다면 매출 부진으로 이어져 결국 파산에 이른다는 점이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규제와 관련이 있는 정부 부처는 합리적이고 유연한 규제 체계의 개선 및 적용을 통해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전 세계의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